“여기가 진짜 대한민국 맞아?”
처음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으며 마음속에 떠올랐던 첫마디입니다. 고요한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 아슬아슬한 데크길을 걷다 보면 마치 자연 다큐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고요.
울릉도를 처음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는 조언이 있습니다. “행남해안산책로는 꼭 걸어야 해.” 사실 저도 처음엔 별 기대 없었어요. 해안길은 전국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됐죠. 울릉도 여행의 진짜 백미는 바로 이 길에서 시작된다는 걸요.
울릉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가장 입체적인 길
행남해안산책로는 울릉도 도동항에서 저동항까지 이어지는 약 2.6km 길이의 해안 산책로예요. 정식 명칭은 ‘행남해안산책로’지만, 현지에서는 ‘행남길’, ‘해안트레킹 코스’ 등으로도 불립니다. 미국 CNN이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은 바도 있을 만큼, 그 매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죠.
이 산책로의 특징은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나무 데크와 철제 보도예요. 절벽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지만,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시원한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죠.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해식동굴, 기암괴석, 숲속 그늘길 등 지형의 변화가 커서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촛대바위’와 ‘행남등대’ 구간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봐야 진짜 스케일이 느껴져요. 이곳에서는 마치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내가 서 있는 듯한 감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벅차오름’이란 단어를 꺼내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도동항에서 시작해 저동항까지, 그 길 위에 펼쳐진 풍경
행남해안산책로는 보통 도동항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동항은 울릉도 여행의 시작점이자 중심지로, 숙소와 식당, 버스터미널, 약국, 편의점이 모두 모여 있어요. 편하게 준비를 하고 트레킹을 시작하기 좋죠.
도동항에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행남마을을 지나게 됩니다. 이 마을은 산책로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어촌인데요, 아주 예전엔 이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던 해안길이 지금의 행남해안산책로가 되었다고 해요. 바다를 등지고 사는 그들의 삶과 흔적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울릉도의 대표 풍경 중 하나인 ‘촛대바위’가 등장해요. 이 바위는 정말 이름 그대로 촛불을 켜놓은 촛대처럼 생겼고, 파도가 높을 땐 바위를 향해 부딪히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룹니다. 일몰 무렵이면 바위와 바다가 붉게 물들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죠.
산책 이상의 경험, 걷기 좋은 계절과 팁
행남해안산책로는 사계절 모두 걷기 좋아요. 하지만 특히 추천하는 시기는 봄과 가을이에요. 봄에는 해송과 들꽃이 어우러지고, 가을엔 선선한 바람 속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낭만이 있죠. 여름철에도 시원한 바닷바람 덕분에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줍니다.
단, 바람이 거세거나 태풍 전후에는 일부 구간이 통제될 수 있습니다. 미리 울릉군청이나 관광 홈페이지에서 산책로 개방 여부를 확인하고 가는 걸 추천해요.
또한, 일부 구간은 데크가 좁고 경사가 있는 구간이 있기 때문에 유모차, 휠체어 사용에는 제약이 있어요. 대신 일반 성인 기준으로는 특별한 장비 없이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입니다.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운동화나 트레킹화 같은 편한 신발, 선크림, 모자, 물 정도만 챙기면 충분합니다. 여름엔 벌레 퇴치제도 잊지 마세요.
울릉도 여행자에게 ‘필수 코스’로 불리는 이유
‘행남해안산책로는 울릉도의 얼굴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울릉도의 지형과 자연, 사람과 바다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 같은 장소입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느끼지 못할, 직접 발로 걷는 경험 속에서 울릉도는 훨씬 더 가까운 존재가 되죠.
저동항까지 도착하면 작은 어촌 마을이 반겨주고, 항구 주변에는 간단한 간식이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들이 많아 여정을 마무리하기에도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도동항에서 저동항까지 한 번에 걷고,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드려요. 울릉도 시내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긴 하지만, 트레킹 후엔 그마저도 꿀맛 같은 휴식이 되더라고요.
다른 말 필요 없이, 울릉도에 간다면 꼭 한 번은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어보세요. '걸어야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이 딱 맞는 장소입니다. 도동항과 저동항, 촛대바위와 행남등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해안 절벽과 파도소리.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길 위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힐링이 됩니다.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온몸으로 풍경을 받아들이는 경험. 아마도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울릉도의 매력이 아닐까요?